기이한 풍경, 기이한 장소가 오래 남는 이유: 세계의 이색 자연과 제주의 조용한 밤
사진으로는 참 선명하게 찍혔는데, 이상하게 나중에 떠올려보면 기억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남더라고요. 우리가 굳이 낯설고 기이한 풍경을 찾아 떠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렌즈에 잘 담기는 멋진 장면보다, 그곳에 서 있었을 때의 공기 온도나 뺨에 닿던 바
기이한 풍경을 찾는 마음은, 어쩌면 낯선 장면보다 낯선 감각을 기다리는 일인지도 몰라요.
사진으로는 참 선명하게 찍혔는데, 이상하게 나중에 떠올려보면 기억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남더라고요. 우리가 굳이 낯설고 기이한 풍경을 찾아 떠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렌즈에 잘 담기는 멋진 장면보다, 그곳에 서 있었을 때의 공기 온도나 뺨에 닿던 바람의 결이 유독 또렷하게 다가오는 순간을 은연중에 기다리게 되니까요.
그래서인지 풍경을 바라보는 저만의 기준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멀리서 바라본 거대한 형태보다는, 그 공간 안에서 내 감각이 얼마나 일렁였는지 그 체감의 짙은 농도가 결국 훨씬 더 오래 남더라고요. 제주의 밤바다를 걸을 때처럼 주변 소리가 한 겹 얇아지고, 어둠 속에서 짠내가 훅 스며드는 그런 시간에는 눈앞의 풍경이 아니라 온전한 감각 그 자체를 간직해서 돌아오게 되는 것 같아요.
세계의 기이한 장소는 왜 비현실적으로 보일까: 지형과 높이가 만드는 장면
세계 곳곳의 기이한 장소들이 유독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더라고요. 단순히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신비로움 때문이라기보다는, 인간이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아득한 시간과 거대한 규모가 하나의 풍경 안에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해발 3,776m에 달하는 후지산과 그 아래 펼쳐진 아오키가하라 숲을 보면 그렇습니다. 864년 화산 대분화 때 흘러내린 용암 위로 무려 3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원시림이 형성된 곳이거든요. 그래서 이곳을 마주하면 그저 어둡고 으스스하다는 느낌을 넘어, 거대한 화산의 시간표 위에서 숲이 기어코 다시 자라난 경이로운 결과물로 바라보게 됩니다.
나미브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도 마찬가지예요. 면적만 5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아득한 공간은 듄 45나 소수스플라이, 데드플라이 같은 기이한 지형들이 그 압도적인 넓이를 묵묵히 증명하고 있죠. 2018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범정산 역시 해발 2,500m 고지대 위에 아찔한 암봉과 짙은 운해, 원시림, 그리고 불교 성지까지 한데 얽혀 있어 그 자체로 비현실적인 감각을 안겨줍니다.
이렇게 각 장소가 품고 있는 실제 높이나 면적, 그리고 까마득한 형성 시기를 하나씩 짚어보면 기이한 장소라는 막연했던 표현이 조금은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결국 우리가 풍경 앞에서 느끼는 낯설음이란 그저 근거 없는 묘한 분위기가 아니라, 우리의 좁은 감각으로는 단번에 받아들이기 벅찬 압도적인 스케일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테니까요.[1]
- [1]참고 : 나무위키
자연이 만든 이색 풍경은 색보다 시간에서 완성되는 것 같아요.
자연이 빚어낸 이색적인 풍경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저 화려한 색채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분명 같은 자리에 서 있는데도 한낮과 해 질 녘, 그리고 계절과 계절 사이를 지날 때마다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주니까요. 결국 우리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 풍경이라는 건 단순히 그 공간 자체가 아니라, 그곳을 묵묵히 스쳐 지나간 시간의 모양에 더 가깝지 않나 싶어요.
지구상에서 인공 불빛이 가장 적다는 나미브 사막은 밤새 쏟아지는 별의 궤적을 온전히 마주하기 참 좋은 장소입니다. 특히 데드플라이는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 하얀 바닥 위로 붉은 사구와 까맣게 고사한 낙타가시나무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곳이죠. 한낮의 색감이 이토록 선명하고 짙은 장소인데도, 사람들은 오히려 해가 비스듬히 기울거나 아예 짙은 어둠이 깔렸을 때 그 풍경이 비로소 선명해진다고들 해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만히 상상해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포스트버그 야생화 보존지역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이곳은 일 년 중 딱 8월에서 9월 사이에만 제한적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허락하는데, 그래서 봄꽃의 융단이라는 아름다운 별명이 붙어 있어요. 일 년에 딱 한 철에만 마주할 수 있는 장면이라는 사실이 그 풍경을 조금 더 애틋하고 간절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가까운 국내의 태안 운여해변을 떠올려봐도 그렇습니다. 잔잔한 바다와 소나무 실루엣, 붉은 노을이 물결에 고스란히 반사되는 시간, 그리고 인공 빛이 잦아든 캄캄한 밤하늘까지. 똑같은 장소라도 어느 시간에 머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오거든요. 자연의 풍경은 눈앞에 멈춰 있는 색보다, 그 색들이 조용히 나타났다 스러지는 순서 안에서 훨씬 더 깊어지는 듯합니다.[1]
- [1]참고 : 테마세이투어
종 하나에도 풍경이 머무는 순간이 있어요: 윈드차임과 풍경종이 만드는 작은 기이함
아주 거창하고 압도적인 절경만이 하나의 장소를 완성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때로는 바람 끝에 가볍게 흔들리는 윈드차임 소리나, 오래된 처마 밑에서 이따금 맑게 울리는 풍경종 소리 한 번이 그날의 장면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 되기도 하니까요.
타이베이 룽산사에 짙게 깔려 있던 기원의 종소리와, 거대한 산세보다 오히려 가만히 머무르게 만들던 황산의 묵직한 고요함을 함께 떠올려 봅니다. 이 두 장소의 기억을 가만히 겹쳐보면, 결국 사람의 걸음을 깊이 붙잡는 건 눈앞에 보이는 웅장한 크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귀에 닿은 소리는 바람을 타고 금세 흩어져버리지만, 이상하게도 그 장소가 품고 있던 고유의 결은 마음속에 참 오래도록 남거든요. 어쩌면 우리가 창가에 걸어두는 윈드차임이나 처마 끝의 풍경종이 하는 일도 이와 비슷할지 몰라요. 눈으로 바라본 풍경 위에 보이지 않는 잔잔한 여백을 더해주어, 그 공간을 조금 더 묘하고 선명하게 기억하도록 만들어주니까요.[1]
멀리 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낯선 풍경, 제주의 구옥과 부모님과의 여행
꼭 멀리 떠나지 않아도 낯선 감각은 뜻밖의 순간에 찾아오곤 해요. 제주의 오래된 구옥 숙소에 머물던 밤이 딱 그랬거든요. 낮에는 그저 평화로워 보이던 돌담이 밤이 되면 바람에 스치며 묵직한 소리를 내고, 낡은 문틈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서늘한 공기가 방 안의 온도를 낯설게 바꿔놓더라고요. 일상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생각보다 훨씬 깊고 고요한 밤을 마주하게 되는 거죠.
만약 부모님과 함께하는 제주도 여행에서 이런 구옥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감성적인 분위기보다는 집의 실제 구조를 먼저 꼼꼼히 따져보는 편이 훨씬 좋아요. 두 분이 따뜻한 온돌을 선호하시는지 푹신한 침대를 편해하시는지, 무릎에 무리가 가는 계단은 없는지, 밤에 화장실 가기 편하게 방과 동선이 가까운지, 그리고 차를 대고 숙소까지 걷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같은 현실적인 부분들 말이에요. 또 마당이 넓은 집은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대신 벌레가 꼬이거나 다소 습할 수도 있으니, 실제 다녀간 사람들의 후기를 찬찬히 확인해 보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런 세세한 기준들만 미리 잘 챙기고 나면, 낡은 집과 부모님이라는 조합은 어쩌면 하나도 의외가 아닐지 몰라요. 유명한 관광지를 바쁘게 찍고 도는 여행보다, 마루에 가만히 앉아 천천히 머무는 일정에 훨씬 잘 맞물리니까요. 오래된 집이 품고 있는 특유의 느릿한 리듬이, 곁에 있는 사람의 걷는 속도까지 참 다정하게 맞춰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고요한 풍경 속에서 부모님과 나누고 싶은 특별한 대화나 기대하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결국 오래 남는 건 가장 큰 절경보다 발걸음을 멈추게 한 작은 종소리일지도 몰라요.
기억에 오래 머무는 풍경이 꼭 거창하고 압도적인 절경만은 아니더라고요. 이를테면 황산은 짙은 운해가 밀려올 때 산봉우리들이 마치 바다 위에 둥둥 뜬 섬처럼 보여서 훨씬 묘한 인상을 남기고, 제주의 밤 해안도로는 해가 지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 파도 소리와 드문드문 켜진 불빛들의 간격이 유독 또렷하게 다가오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딘가에 도착하면 무작정 사진부터 찍기보다, 그곳에 가만히 멈춰 서 있을 만한 이유가 있는지 먼저 찬찬히 느껴보는 편이에요. 짙고 어두운 바다 냄새가 훅 스치고, 어디선가 멀리서 종소리 한 번이 조용히 울려 퍼지는 그런 찰나의 순간들 말이에요.
어쩌면 여행이 끝난 뒤에 우리 마음에 진짜 남는 건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풍경의 크기보다, 무심코 걷던 걸음을 늦추게 만들었던 그 조용하고 사소한 장면들인 것 같아요.